작물의 생장과 수확량은 토양의 물리적, 화학적, 생물학적 특성에 크게 의존합니다. 그중에서도 토양 유기물은 토양 비옥도의 핵심 지표로 여겨지며, 작물의 양분 흡수, 뿌리 활착, 토양 구조 개선 등 다양한 측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유기물은 단순히 식물 잔사나 동물 배설물의 잔여물이 아니라, 토양 속 미생물의 분해 작용을 거쳐 만들어지는 복잡한 교질 물질로서, ‘부식(humus)’의 형태로 토양 내에 존재하게 됩니다. 본 글에서는 유기물의 정의와 기능, 토양 부식과 작물 생육과의 관계, 그리고 우리나라 실정에서 유기물 공급의 현실과 과제를 종합적으로 정리하였습니다.
1. 토양 유기물의 정의와 기능
유기물이란 식물 잔사, 동물의 배설물, 미생물의 사체 등 유기 기원의 물질이 토양 내에서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면서 생성된 다양한 유기화합물을 말합니다. 이 중에서도 미생물에 의해 충분히 분해되고 안정된 형태로 존재하는 것을 ‘부식(humus)’이라 하며, 갈색 또는 암갈색의 일정한 구조가 없는 고분자 교질 물질입니다. 부식은 물리적으로는 점착성과 흡습성이 높고, 화학적으로는 음전하를 띠어 양이온을 잘 흡착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어 토양 비옥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유기물의 주요 기능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완충작용을 통해 토양의 pH 변화를 완화시키며, 알루미늄이나 중금속 이온과 결합하여 독성을 줄여줍니다. 둘째, 미생물의 주요 에너지원이 되어 유익한 미생물의 번식을 촉진하고, 병원성 미생물의 활성을 억제하여 작물 병해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셋째, 유기물 자체가 질소(N), 인(P), 칼륨(K), 칼슘(Ca), 마그네슘(Mg), 붕소(B), 아연(Zn) 등 주요 양분을 함유하고 있어 분해 과정에서 작물에 직접 양분을 공급합니다. 넷째, 토양 입자와 유기물 간 결합으로 인해 입단 구조를 형성하고, 이를 통해 토양의 통기성, 투수성, 보비력(양분 유지 능력), 보수력(수분 유지 능력)을 동시에 향상시킵니다.
또한 유기물 분해 과정에서 이산화탄소(CO₂)와 같은 기체가 방출되어 작물 주변의 CO₂ 농도를 높이고 광합성을 촉진하는 부가 효과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유기물은 생장조절물질(호르몬, 핵산류 등)의 생성, 토양 온도 유지, 암석 풍화 촉진 등 복합적인 토양 환경 개선에 기여합니다. 특히 유기물의 암갈색은 일조 시 토양 온도 상승을 유도하여 작물의 생장 시기를 앞당기거나 뿌리 활착을 빠르게 유도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2. 토양 부식과 작물 생육의 상관성
토양 유기물의 함량이 증가하면 일반적으로 토양 비옥도가 높아져 작물 생육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러나 모든 경우에 무조건적인 유기물 증가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유기물이 지나치게 많을 경우, 즉 부식 함량이 20%를 초과하는 부식토에서는 토양이 산성화되어 오히려 작물 생육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이는 부식산, 후민산 등의 유기산 생성이 과도하게 일어나 토양의 pH를 급격히 낮추기 때문이며, 특히 점토 함량이 낮은 토양에서는 양분 유지 능력이 약해져 양분 손실이 더욱 심화됩니다.
반면, 부식이 적정 수준(2~5%)으로 유지되고 토양 통기성과 배수성이 양호한 환경에서는 유기물의 분해가 원활히 진행되어 토양 내 미생물 활성이 높아지고, 양분의 가용성도 증가하게 됩니다. 그러나 통기성이 부족한 습답지에서는 산소 공급이 어려워 유기물 분해가 지연되고, 토양 내에 과잉 유기물이 축적되어 고온기에는 급격한 분해와 함께 환원상태가 발생하여 뿌리의 생장을 억제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질소의 환원으로 인한 암모니아 농도 상승, 황화수소 생성 등이 문제로 작용합니다.
따라서 토양 유기물 관리는 단순한 투입의 문제가 아니라, 작토층의 구조, 토양 질감, 미생물 군집 등과 함께 통합적으로 고려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밭작물 중심의 경운재배 토양에서는 유기물 분해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유기물의 지속적인 시용이 요구되며, 논에서는 물 관리와 병행하여 유기물 분해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3. 우리나라 유기물 공급 현실과 개선 방향
우리나라 농경지 대부분은 화강암을 모암으로 한 산성 토양이며, 여름철 집중호우로 인한 침식과 유기물 유실이 매우 심각합니다. 이로 인해 전반적으로 유기물 함량이 낮은 상태에 있으며, 작물 재배 과정에서 유기물의 자연적 보충이 어려운 구조입니다. 또한 전통적으로 녹비작물 재배나 윤작 체계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아 유기물 자급 기반이 부족합니다. 농촌 고령화 및 기계화 미비로 인해 겨울철 푸른들 가꾸기 운동도 일부 지역에 국한되어 있으며, 농가의 자발적인 유기물 관리 노력은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현재 유기물의 주요 공급원은 퇴비, 구비(가축분 퇴비), 녹비(녹색비료용 작물), 고간류(볏짚, 보릿대 등)이며, 이 중에서도 퇴비는 축산 농가의 가축분뇨를 활용한 유기질 비료로 사용 비율이 가장 높습니다. 특히 호밀, 자운영, 헤어리베치(hairy vetch) 등의 녹비 작물은 겨울철 유휴지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 매우 유용한 공급원으로 평가됩니다. 하지만 작부 체계와 노동력 확보 문제로 인해 녹비 작물의 대량 도입은 한계가 있으며, 이를 보완하기 위해 지방정부나 농업기술센터의 지원 사업 확대가 절실합니다.
앞으로는 단순히 유기물 시용량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유기물의 품질을 고려한 선택적 활용이 중요합니다. 부숙이 덜 된 유기물은 오히려 토양 내 질소를 흡수하여 작물의 초기 생장을 저해할 수 있으므로, 완숙 퇴비의 사용과 적절한 시용 시기 조절이 핵심입니다. 또한, 장기적으로는 작부 체계 개선을 통해 자급 가능한 유기물 순환 구조를 정착시켜야 하며, 이를 위해 작물 선택, 윤작 체계 구성, 유휴지 활용 등을 병행해야 합니다. 나아가 탄소중립 시대에 부응하여 유기물 기반의 저탄소 농업 모델을 확립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 중 하나입니다.